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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홍도(金弘道). 제목 : 무이귀도(武夷歸圖), 산사귀승도

산곡 2024. 1. 6. 08:06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무이귀도(武夷歸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족자 종이에 담채

규격 : 112.5 x 52.6 cm

소장 : 간송미술관

 

해설 : 무이산(武夷山)은 지금 대만의 대안(對岸)에 해당하는. 복건성건녕부(福建省建寧府)에 있는 길이 120리의 명산이다. 36봉과 37암 그리고 그 사이를 흘러내리는 건계(建溪)가 어우러지며, 선경을 빚어내어 한무제(漢武帝) 때부터. 무이군(武夷君) 이라는 신선이 살았다 하고. 가깝게는 松代의 신선 옥섬(玉蟾) 갈장경(葛長庚)이. 이 산속에 숨어 살았다고도 하는. 신비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빼어난 경치로 인해, 수많은 탐승객이 이곳을 찾아 절경을 읊었으나, 중국 십철(十哲) 중의 한 사람이자. 주자(朱子) 성리학의 개조로서 추앙받는,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노래한,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만큼 무이산구곡(武夷山九曲)을 유명하게 한 것은 없다. 이후 건계가 36봉 37암을 감아 흘러내리며 빚어낸 아홉 굽이는 화가들에 의해 즐겨 그려지게 되었는데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하여 중국보다 더욱 성리학적 학문체계를 발전시켰던 조선에서도 주자의 무이구곡가는 중요한 소재로서 일찍부터 그려졌었다. 김홍도의 이 그림이 구곡중에서 어디를 그렸는지 언뜻 알기 어렵지만. 하엽준(荷葉皴)으로 처리된 기암준봉과. 그 사이를 굽이쳐 내려오는 탕탕한 계류를 타고 치닫는 선유(船遊)는 실로 호방장쾌 하여. 무이구곡 전체가 이 한폭에 모두 담겨진 것 같으니. 굳이 어느 굽이의 경치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뜸집배 안에 상반신을 드러낸 채 절경을 승람하는 인물로 그려진. 주희의 단아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사공들이 행색은 분명 조선 사람의 그것이어서, 당시 풍미하던 조선중화(中華)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작가 : 김홍도(金弘道)

아호 : 단원(檀園)

제목 : 산사귀승도(山寺歸僧圖)

언제 : 18세기 말

재료 : 종이에 담채

규격 : 28 x 32.7 cm

소장 : 한국개인

 

해설 : 화면 전부가 하나의 꼴짜기이고. 양쪽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계곡이 깊다. 저 멀리 더 깊은 골에서 흘러오는 계곡물 위로, 어느절로 들어가는 극락교(極樂橋)가, 맛배기와지붕 구조와 둥근 창으로 되어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절의 암자가 하나 비스듬히 지붕과 한쪽 벽만 보이는데. 그림의 전경 왼쪽아래에 삭발승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벼랑길을 따라 귀사(歸寺)하고 있다. 바위 벼랑은 모두 초묵(焦墨)의 굵직하고 꺾이는, 붓자국으로 힘있게 내리긋고. 절벽의 암준(岩皴)도 굵은 초묵으로 담묵 바탕에 내리긋거나 점을 찍었다. 왼쪽벼랑 즉 귀사하는 중의 머리 위로. 단풍난무가 바위에 뿌리를 박고 늘어져 있고. 또 이곳저곳에 시커먼 먹을 찍어. 곧은 침엽수 줄기를 묘사하고. 짧은 횡선으로 두툼하거나 성기게 가지와 잎을 나타냈다. 후면의 계곡은 아득하게 하늘과 접하여. 끝간 데를 모르겠고. 그 위 훤한 공간에다 싯귀를 썼지만. 그중 몇자만 알아보겠다. 또한 암자의 파풍(破風)과. 극락교의 토벽(土壁)에만 연한 주칠과 황토색이 보인다. 근래에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이. 단원의 낙관과 제시(題詩)가 벗겨진 것을 애석해 하는 평어(評語)와 낙관. 도서(圖書)가 왼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