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명화

작가 : 이명기(李命基).김홍도(金弘道)합작. 제목 : 서직수초상(徐直修肖像)

산곡 2024. 3. 13. 21:08

 

작가 : 이명기(李命基).김홍도(金弘道)합작

제목 : 서직수초상(徐直修肖像)

언제 : 1796

재료 : 족자 비단에 담채

규격 : 148 x 73 c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조선시대 회화 중에서 초상이 점하는 위치는 자못 지대하다. 특히 유교숭배로서 조상에 대한 각별한 공경과 스승에 대한 지극한 존경이 사묘(祠廟). 영당(影堂)과 서원의 발달로 현실적인 요구가 절실했다.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과 공신(功臣)이 생길 때 마다 그려졌던 공신초상. 기로연(岐路宴)의 기록화적인 성격의 도상(圖像) 및 일반 사대부의 초상에 이르기 까지 무수히 그려졌다. 또한 사찰의 승상이나. 드물긴 하지만 여인상도 있다. “서직수초상은” 오른쪽 상단에 주인공 자신이 쓴 자발(自跋)에 의해 그림을 그린 화가와 제작연대를 알수있다. 즉 초상의 얼굴은 이명기가. 몸은 김홍도가 그렸다. 이명기는 생몰연대가 미상이다. 화원 이종수(李宗秀)의 아들이며. 김응환(金應煥)의 사위이다. 1791년 정조(正祖) 어진 제작시 그는 주관화사(主管畵師)로, 김홍도는 동참화사로. 신한평(申漢坪). 김득신(金得臣) 등이 수종(隨從)화사로 참가했다. 정조는 자신의 어진을 보며 실제와 흡사하여 웃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보다 먼저 1784년에는 나주 미천서원(眉泉書院)에 봉안 되었다가 현재는 분실된채제공(蔡濟恭) 65세像)을 그린 사실이 승정원일기에 보인다. 당대에 가장 활동이 두드러졌던 두 화원에 의해 제작된 <서직수초상>은 평상복 차림으로 머리엔 검은 동파관(東坡冠)을 쓴 좌안팔면입상(左顔八面立像)이다. 얼굴은 명암을 의식한 설채로 피부색이 여실하며. 왼쪽 볼에 핀 검버섯 및 주름살과 근육이 실물에 방불하게 나타낸 일종의 요철 기법이 보인다. 형형한 안광이 번득이는 눈동자의 처리 등 핍진(逼眞)한 표현이다. 얼굴에 의해 일반적으로 소흘히 다루어지기 쉬운 의복은, 별도로 김홍도(金弘道)가 그려서 인지 섬세하고 고른 필선이다. 옷주름이 사실적인 완만한 곡선으로 그려졌고, 선염(渲染)에 의한 입체감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가슴에 동여맨 띠는 동파관과 동일한 짙은 묵색으로 칠해져 일직선상으로 늘어져 있다. 사뭇 단조롭고 비단 바탕색과 유사한 옷색임에 대해 화면설채에 있어, 하단 3분의1을 점한 녹색 자리표현은. 시원한 배색효과를 이루고 있다. 당시 초상화의 높은 수준을 대변하는 걸작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