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명화

작가 : 최북(崔北). 제목 : 금강산표훈사도(金剛山表訓寺圖)

산곡 2024. 6. 25. 05:49

 

작가 : 최북(崔北)

아호 : 호생관(毫生館). 삼기재(三奇齋). 거기재(居其齋)

제목 : 금강산표훈사도(金剛山表訓寺圖)

언제 :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38.5 x 57.5 cm

소장 : 한국개인

 

해설 : 최북의 처음 이름은 식(植)이고 자는 성기(聖器). 유용(有用). 칠칠(七七) 등을 사용했고. 호는 호생관(毫生館). 삼기재(三奇齋). 거기재(居其齋) 등 이었지만 호생관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 이 금강산표훈사도(金剛山表訓寺圖)는 금강산의 표훈사와 그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려내듯. 뚜렷하게 넓은 폭으로 전개하여 묘사한 작품이다. 일종의 평원산수법에 의해 내산과 외산을 거의 동일선상에서 묘사하고 있어, 이것은 마치 산으로 들어갈수록 멀리 있는 높은 산들이 오히려 낮게 보이는 시각의 착각 현상을 그대로 나타낸 작품이다. 조희룡의 호산외사(壺山外史)의 최북전(崔北傳)에 의하면. 최북은 중국 원말 사대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을 아주 숭상하였다고 한다. 이 점에서 살펴보면 최북을 남화산수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수 있지만, 실제로는 청조(淸朝)화단과 일맥이 통하는 자기 자신의 독특한 산수법을 유감없이 구사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최북은 가문이나 출신은 물론 생년 몰년도 명확하지 않고. 한양의 객사에서 세상을 마친때가 49세였다. 최북과 서로 친분이 있는 동료 화가에는 김홍도(金弘道). 김득신(金得臣). 이인문(李寅文) 등이 있지만, 그의 화풍은 이들 동료화가들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고 볼수있다. 수직 표현의 과장이나. 때로는 밀도가 없는 무기력한 묘사를 보여주지만. 대체로 자유분방한 필치로 야성적인 취향이 듬뿍 깃든 작품이 많다. 그는 한쪽 눈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물론이고 어떤일에도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타인의 비평이나 칭찬과 비난에도 일체 관심을 두지않는 기행(奇行)과 주벽이 있었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