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명화

작가 : 황신(黃愼). 제목 : 수선도(水仙圖) 외

산곡 2023. 7. 27. 08:03

 

작가 : 황신(黃愼)

아호 : 영표(癭瓢)

제목 : 수선도(水仙圖)

언제 : 1766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수묵담채

규격 : 23.2 x 33.6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황신은 자를 공수(恭壽), 호를 영표(癭瓢)라고 한 양주팔괴 중의 한 사람이다. 술을 대단히 조아하고. 신기(神氣)가 넘치는 그림을 그린 황신은 늘 술을 마시고 바람처럼 빠른 붓놀림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12폭의 잡화책(雜畵冊)맨 첫머리에 있는 이 그림도 얼핏보면 무슨 그꼭适? 무슨 글씨인지 모를 정도로 속필로 그리고 썼다. 초서로 쓴 7언4귀의 제시는 다음과 같다. 수린요초자선춘(誰撛瑤草自先春). 득득동풍립수빈(得得東風立水濱), 조투상군상십폭(潮透湘群剛十幅). 복비원시낙천신(宓妃原是洛川神). 구멍뚫린 괴석을 화폭 가운데에 두고 수선(水仙)과 제시를 양쪽에 그리고 쓴 구도도 대담하고 기이하다. 그림은 균형. 숭고. 조화 등에서 오는 아름다움보다는 날카로운 개성과 광기에서 오는 섬광 같은 화의만이 보인다. 이런 괴상한 그림도 상찬되고 돈 많은 양주 상인들이 샀기 때문에 양주 팔괴들은 작품생활을 계속할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교호시초(晈湖詩鈔). 낙영집(落英集) 이 있으며. 정판교(貞板橋)와 친분이 두터웠다. 황신의 가장 큰 장점은 예찬의 산수화를 종사(宗師)한 점이다. 가는 그의 다른 작품 양류촌락도(楊柳村落圖)에서 세련된 필치와 촌락의 경치를 잘 묘사하여 풍경화가로서도 이름이 높았다.

 

 

작가 : 황신(黃愼)

아호 : 영표(癭瓢)

제목 : 소장공극립도(蘇長公屐笠圖)

언제 : 1748년

재료 : 두루마리 종이에 담채

규격 : 28.3 x 194.5 cm

소장 : 한국 신효충

 

해설 : 이그림의 주인공인 소식(蘇軾)은 자를 자첨(子瞻). 호를 동파거사(東坡居士)라 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장공(長公). 대소(大蘇). 파공(坡公) 등이라 했다. 그 소동파가 삿갓 쓰고 짚신 신고 빗속을 가는 모습을 그린 이그림은 황신이 61세 때 그린 역작(力作)이다. 두명의 신선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여름 소나기를 급히 피하고 있지만. 소동파만이 비가 즐거운 듯이 의연히 맞으며 걸어가고 있다. 당송 팔대가의 하나였던 그의 탈속한 모습을 황신은 너무나 잘 나타냈는데 신기에 넘치는 인물들의 모습. 배경을 이룬 산수소경(山水小景). 햇볕에 드러난 바위와 빗속의 바위 등이 극명(克明)하게 묘사되어 그의 특출한 화기(畵技)를 잘 보여주고 있다. 28.3 x 187.5cm 크기의 별지에 쓴 5백 여자의 긴 오언율시(五言律詩)가 합벽(合壁)으로 되어 있다.

 

작가 : 황신(黃愼)

아호 : 영표(癭瓢)

제목 : 복생수경도(伏生授經圖)

언제 : 1748년

재료 : 족자 비단에 담채

규격 : 234.8 x 139 cm

소장 : 천진 예술박물관

 

해설 : 황신의 그림. 특히 인물화에는 소위 민습(閩習)이 강하게 보인는데 민습이란 복건성(福建省) 출신 화가들이 보이는 특별한 습관을 뜻한다. 황신의 작품가운데 인물을 그린 사의인물도(寫意人物圖).기려인물도(騎驢人物圖). 기려심매도(騎驢尋梅圖). 인물산수도. 이백취주도(李白醉酒圖). 수묵미인도(水墨美人圖). 종규수역도(鐘馗授易圖) 등에서 한결같이 민습을 볼수 있다. 이런 인물화들은 대체로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황신이 그린 인물의 기이함은 적어도 경제적인 필요 때문에. 즉 양주 거상(巨商)들의 관심을 끌어 그림을 팔기위한 방법으로 쓰여지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이 그림은 복생이 조착(鼂錯)으로부터 상서(尙書)를 전수받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필묵은 정교하고 세치(細緻)하면서도 인물들의 표정과 자태는 자연스럽다. 이 그림은 그의 초기의 정세(精細)한 필치의 대작이라 하겠다. 쏟아져내릴 듯 거대한 괴석이 그림을 더욱 예스러우면서 괴이하게 하고 있다.

작가 : 황신(黃愼)

아호 : 영표(癭瓢)

제목 : 자양문수도(紫陽問壽圖)

언제 : 1734년

재료 : 족자 비단에 설채

규격 : 88.2 x 96.4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많은 양주 화가들 가운데서도 황신은 아주 드문 직업화가였다. 일찍 아버지와 사별한 그는 홀어머니을 극진히 모시면서 그림을 팔아서 생활한 화가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황효자(黃孝子)라는 말을 들은 그는 어려서부터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책을 읽어 20세 무렵부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황신은 산수. 인물. 도석 등을 잘 그렸고. 글씨는 초서에 뛰어났다. 그의 나이 47세에 그린 이그림은 자양진인(紫陽眞人)이 선문(羨門)선생을 산중에서 만나 장생술(長生術)을 물었다는 고사를 그린 것인데. 황신의 능숙한 인물화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인물은 부드럽지만 옷주름은 날카롭다. 자양진인은 한나라 고조 때 고관을 지낸 주의산(周義山)의 별호이고. 선문은 진시황제 때 동해(東海)가운데 살았던 선인(仙人)이다. 달필에 비필(飛筆)로 쓴 제발이 그림의 왼쪽위에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