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丁若鏞(다산 정약용). 山行雜謳 20수(산행잡구 20수)
산길을 가며 부르는 이런저런 노래
[ 제 1 수 ]
無計留春住(무계류천주)
봄을 머물러 살게 할 방법이 없으니
何如迎夏來(하여영하래)
오는 여름 맞이하는 것이 어떤가.
也知僧院好(야지승원호)
절이 좋은 줄 알겠네.
山裏有亭臺(산리유정대)
산속에 정자와 누대樓臺가 있으니….
[ 제 2 수 ]
幽懷猝發時(유회졸발시)
마음속 깊이 품은 생각이 갑자기 날 때는
鷹隼秋天翥(웅준추천저)
가을 하늘 날아오르는 송골매가 되어
不問某家山(불문모가산)
아무개네 집 산이고 가리지 않고
綠陰多處去(록음다처거)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 그늘 짙은 곳으로 가네.
[ 제 3 수 ]
殽蔌誠難少(효속성난소)
안주야 정성을 다하면 적어도 상관없지만
紛紜且勿爲(분운차물위)
떠들썩하여 복잡하고 어지러우니 만들 것 없고
唯將一壺酒(유장일호주)
오직 술 한 병을
付與小童持(부여소동지)
어린아이에게 주어 들고 오게 하네.
[ 제 4 수 ]
本爲山林好(본위산림호)
본디 산과 숲을 좋아하지만
那知城樹奇(나지성수기)
성 안의 나무 기이한 것을 어찌 알까.
一行三二里(일행삼이리)
한 번 발걸음에 이삼 리만 걸어도
無樹不黃鸝(무수불황리)
꾀꼬리 없는 나무는 하나도 없네.
[ 제 5 수 ]
瀲灩西池水 (렴염서지수)
넘실넘실 넘치는 서쪽 연못물
無人話種蓮(무인화종련)
연을 심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年年破茅屋(년년파모옥)
해마다 허물어진 초가집에서
但索築隄錢(단색축제전)
오직 둑 쌓을 돈만 찾네.
[ 제 6 수 ]
沙上鮮魚市(사상선어시)
모래 위는 신선한 물고기 파는 시장이고
橋邊濁酒家(교변탁주가)
다리 근처는 막걸리 파는 집이네.
由來壚上女(유래로상녀)
언젠가부터 주막 여자들은
紅髮似夷鰕(홍발사이하)
붉은 머리털이 오랑캐 여자 같네.
[ 제 7 수 ]
臨水黃茆屋(임수황묘옥)
물가에 자리 잡은 초가집
中棲賣藥翁(중루매약옹)
그 안에는 약 파는 노인이 사는데
婆娑數枝柳 (파사수지유)
하늘하늘 버드나무 몇 가지가
搖作一簾風(요작일염풍)
바람결에 발처럼 흔들거리네.
[ 제 8 수 ]
筇竹鏗鳴響(공죽갱명향)
대지팡이 덜그럭대며 끄는 소리 울리는
山腰一徑微(산요일경미)
산허리에 나 있는 오솔길 하나.
野僧扶醉過(야승부취과)
시골 승려는 취한 몸을 가누며 지나가고
溪女戴樵歸(계녀재초귀)
산골 아낙은 땔나무를 이고 돌아오네.
[ 제 9 수 ]
體倦休因數(체권휴인수)
몸은 고달파 자주 쉬기는 해도
心閒坐遂遲(심한좌수지)
마음이 한가로워 오래도록 앉아 있네.
偏於夕陽處(편어석양처)
저무는 해가 비치는 곳에만 보이는
覺有數峯奇(각유수봉기)
봉우리 몇 개가 기이하다는 것을 깨닫네.
[ 제 10 수 ]
疊疊山坡石(첩첩산파석)
산언덕은 겹겹이 바위인데
些些躑躅花 (사사척촉화)
하잘것없이 작은 철쭉꽃이 피어 있네.
頻年斤斧厄(빈년근부액)
해마다 도끼질 당하는 불행한 일을 겪었으니
辛苦有杈枒(신고유차야)
괴롭고 고생스럽게도 가장귀진 나무가 되었네.
[ 제 11 수 ]
漸醉狂難禁 (점취광난금)
점점 취할수록 누르기 어려운 광기狂氣 때문에
微吟意未通(미음의미통)
작은 소리로 읊으면 그 뜻이 통하지 않네.
數聲漁父曲(수성어부곡)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 몇 마디 흥얼거리다가
新製滿江紅 (신제만강홍)
새로 <만강홍滿江紅>을 지었네.
[ 제 12 수 ]
已竭甁中酒 (이갈병중주)
이미 병 안에 술이 다 떨어져
初尋石竇泉 (초심석두천)
처음에는 좁은 돌구멍에서 나오는 샘물을 찾았네.
癭瓢眞作累 (영표진작누)
자루바가지가 참으로 번거로워
彌覺許由賢 (미각허유현)
맨손으로 물을 마신 허유許由가 현명했음을 더 잘 알겠네.
[ 제 13 수 ]
寺下千章榧(사하천장비)
절 아래 수많은 비자나무
深深翠障橫(심심취장횡)
푸른 병풍이 깊고 깊게 가로막았네.
可憐汊上路 (가련차상로)
가엾고 불쌍해라, 두 줄기로 나뉜 강물 위의 길들
都似峽中行 (도사협중행)
모두가 두메를 걷는 것 같네.
[ 제 14 수 ]
山路行方困 (산로행방곤)
산길 걸어 고단하려든 차에
禪樓到似家(선루도사가)
절의 누각樓閣에 다다르니 내 집 같네.
嫩黃千萬樹(눈황천만수)
부드럽고 누런 잎의 수많은 나무들이
全勝寂寥花 (전승적요화)
적적하고 쓸쓸한 꽃보다 훨씬 더 낫네.
[ 제 15 수 ]
打葉三更雨(타엽삼 경우)
한밤중에 내리던 비가 나뭇잎을 때리더니
穿林一炬來(천림일거래)
숲을 뚫고 횃불이 하나 왔네.
惠公眞有分(혜공진유분)
혜장 공惠藏公과는 참으로 인연이 있는지
巖戶夜深開 (암호야심개)
바위 문을 밤 깊도록 열어 두었었네.
[ 제 16 수 ]
夾岸山茶樹 (협안산다수)
언덕을 끼고 늘어선 동백나무들
猶殘晼晚紅 (유잔원만홍)
아직도 해 질 녘이면 붉게 물든 꽃이 남아 있네.
那將錦步障 (나장금보장)
어떻게 해야 비단 장막을 가져다가
遮截楝花風 (차절련화풍)
꽃바람 못 들어오게 막을 수 있을까.
[ 제 17 수 ]
連夜迎梅雨 (련야영매우)
여러 날 밤을 계속해서 내리는 봄비가
淹留喜有言 (엄류희유언)
사람을 오래 머무르게 하는 바람에 얘기꽃을 피웠네.
只緣歸亦客 (지연귀역객)
다만 돌아가도 또한 나그네이기에
無意出山門 (무의출산문)
절을 나설 생각이 없네.
[ 제 18 수 ]
門帖金生筆 (문첩금생필)
문에 붙인 대련對聯은 서성書聖 김생金生의 글씨고
樓懸道甫書 (루현도보서)
누각樓閣 현판懸板은 도보道甫 이광사李匡師가 썼네.
世遙疑有贋 (세요의유안)
시대가 멀어 가짜일까 의심하지만
名重覺無虛 (명중각무허)
소중한 명예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네.
[ 제 19 수 ]
倭奴昔破碣(왜노석파갈)
왜놈들이 옛날 비석을 부쉈어도
公子尙留名(공자상류명)
공자公子는 오히려 이름을 남겼네.
惆悵銅龍闥(추창동룡달)
실망하여 슬프네, 구리로 만든 용으로 장식한 문에
王兄做佛兄(왕형고불형)
왕의 형이요 부처의 형도 된다고 했었는데….
[ 제 20 수 ]
數曲山谿水 (수곡산계수)
굽이굽이 산골짜기를 돌아 흐르는 시냇물이
悠然送我回 (유연송아회)
돌아가는 나를 침착하고 여유롭게 배웅하네.
臨辭好泉石 (임사호천석)
떠날 즈음 대자연大自然의 경치가 좋아
無處不遲徊 (무처부지회)
여기저기 머뭇거리지 않는 곳이 없네.
'서체별 병풍' 카테고리의 다른 글
王 維 (왕 유). 贈弟穆十八 6수(증제목십팔 6수) 목씨 가문의 18번째 아우에게 주다 (2) | 2023.12.21 |
---|---|
順菴 安鼎福 (순암 안정복). 分宜堂八詠(분의당팔영) 분의당을 읊은 여덟 수 (2) | 2023.12.21 |
尤庵 宋時烈(우암 송시열). 靈芝洞八詠(영지동팔영) 영지동주변의 여덟가지를 읊다 (1) | 2023.12.20 |
香山居士 白居易(향산거사 백거이). 何處難忘酒 7首(하처난망주 7수)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0) | 2023.12.20 |
香山居士 白居易(향산거사 백거이). 田園樂七首(전원낙칠수) 정원의 즐거움 (1) | 2023.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