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별 병풍

茶山 丁若鏞(다산 정약용). 山行雜謳 20수(산행잡구 20수) 산길을 가며 부르는 이런저런 노래

산곡 2023. 12. 21. 10:59

茶山 丁若鏞(다산 정약용).   山行雜謳 20수(산행잡구 20수)

산길을 가며 부르는 이런저런 노래

 

[ 제 1 수 ]

無計留春住(무계류천주)

봄을 머물러 살게 할 방법이 없으니

何如迎夏來(하여영하래)

오는 여름 맞이하는 것이 어떤가.

也知僧院好(야지승원호)

절이 좋은 줄 알겠네.

山裏有亭臺(산리유정대)

산속에 정자와 누대樓臺가 있으니….

 

[ 제 2 수 ]

幽懷猝發時(유회졸발시)

마음속 깊이 품은 생각이 갑자기 날 때는

鷹隼秋天翥(웅준추천저)

가을 하늘 날아오르는 송골매가 되어

不問某家山(불문모가산)

아무개네 집 산이고 가리지 않고

綠陰多處去(록음다처거)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 그늘 짙은 곳으로 가네.

 

[ 제 3 수 ]

殽蔌誠難少(효속성난소)

안주야 정성을 다하면 적어도 상관없지만

紛紜且勿爲(분운차물위)

떠들썩하여 복잡하고 어지러우니 만들 것 없고

唯將一壺酒(유장일호주)

오직 술 한 병을

付與小童持(부여소동지)

어린아이에게 주어 들고 오게 하네.

 

[ 제 4 수 ]

本爲山林好(본위산림호)

본디 산과 숲을 좋아하지만

那知城樹奇(나지성수기)

성 안의 나무 기이한 것을 어찌 알까.

一行三二里(일행삼이리)

한 번 발걸음에 이삼 리만 걸어도

無樹不黃鸝(무수불황리)

꾀꼬리 없는 나무는 하나도 없네.

 

[ 제 5 수 ]

瀲灩西池水 (렴염서지수)

넘실넘실 넘치는 서쪽 연못물

無人話種蓮(무인화종련)

연을 심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年年破茅屋(년년파모옥)

해마다 허물어진 초가집에서

但索築隄錢(단색축제전)

오직 둑 쌓을 돈만 찾네.

 

[ 제 6 수 ]

沙上鮮魚市(사상선어시)

모래 위는 신선한 물고기 파는 시장이고

橋邊濁酒家(교변탁주가)

다리 근처는 막걸리 파는 집이네.

由來壚上女(유래로상녀)

언젠가부터 주막 여자들은

紅髮似夷鰕(홍발사이하)

붉은 머리털이 오랑캐 여자 같네.

 

[ 제 7 수 ]

臨水黃茆屋(임수황묘옥)

물가에 자리 잡은 초가집

中棲賣藥翁(중루매약옹)

그 안에는 약 파는 노인이 사는데

婆娑數枝柳 (파사수지유)

하늘하늘 버드나무 몇 가지가

搖作一簾風(요작일염풍)

바람결에 발처럼 흔들거리네.

 

[ 제 8 수 ]

筇竹鏗鳴響(공죽갱명향)

대지팡이 덜그럭대며 끄는 소리 울리는

山腰一徑微(산요일경미)

산허리에 나 있는 오솔길 하나.

野僧扶醉過(야승부취과)

시골 승려는 취한 몸을 가누며 지나가고

溪女戴樵歸(계녀재초귀)

산골 아낙은 땔나무를 이고 돌아오네.

 

[ 제 9 수 ]

體倦休因數(체권휴인수)

몸은 고달파 자주 쉬기는 해도

心閒坐遂遲(심한좌수지)

마음이 한가로워 오래도록 앉아 있네.

偏於夕陽處(편어석양처)

저무는 해가 비치는 곳에만 보이는

覺有數峯奇(각유수봉기)

봉우리 몇 개가 기이하다는 것을 깨닫네.

 

[ 제 10 수 ]

疊疊山坡石(첩첩산파석)

산언덕은 겹겹이 바위인데

些些躑躅花 (사사척촉화)

하잘것없이 작은 철쭉꽃이 피어 있네.

頻年斤斧厄(빈년근부액)

해마다 도끼질 당하는 불행한 일을 겪었으니

辛苦有杈枒(신고유차야)

괴롭고 고생스럽게도 가장귀진 나무가 되었네.

 

[ 제 11 수 ]

漸醉狂難禁 (점취광난금)

점점 취할수록 누르기 어려운 광기狂氣 때문에

微吟意未通(미음의미통)

작은 소리로 읊으면 그 뜻이 통하지 않네.

數聲漁父曲(수성어부곡)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 몇 마디 흥얼거리다가

新製滿江紅 (신제만강홍)

새로 <만강홍滿江紅>을 지었네.

 

[ 제 12 수 ]

已竭甁中酒 (이갈병중주)

이미 병 안에 술이 다 떨어져

初尋石竇泉 (초심석두천)

처음에는 좁은 돌구멍에서 나오는 샘물을 찾았네.

癭瓢眞作累 (영표진작누)

자루바가지가 참으로 번거로워

彌覺許由賢 (미각허유현)

맨손으로 물을 마신 허유許由가 현명했음을 더 잘 알겠네.

 

[ 제 13 수 ]

寺下千章榧(사하천장비)

절 아래 수많은 비자나무

深深翠障橫(심심취장횡)

푸른 병풍이 깊고 깊게 가로막았네.

可憐汊上路 (가련차상로)

가엾고 불쌍해라, 두 줄기로 나뉜 강물 위의 길들

都似峽中行 (도사협중행)

모두가 두메를 걷는 것 같네.

 

[ 제 14 수 ]

山路行方困 (산로행방곤)

산길 걸어 고단하려든 차에

禪樓到似家(선루도사가)

절의 누각樓閣에 다다르니 내 집 같네.

嫩黃千萬樹(눈황천만수)

부드럽고 누런 잎의 수많은 나무들이

全勝寂寥花 (전승적요화)

적적하고 쓸쓸한 꽃보다 훨씬 더 낫네.

 

[ 제 15 수 ]

打葉三更雨(타엽삼 경우)

한밤중에 내리던 비가 나뭇잎을 때리더니

穿林一炬來(천림일거래)

숲을 뚫고 횃불이 하나 왔네.

惠公眞有分(혜공진유분)

혜장 공惠藏公과는 참으로 인연이 있는지

巖戶夜深開 (암호야심개)

바위 문을 밤 깊도록 열어 두었었네.

 

[ 제 16 수 ]

夾岸山茶樹 (협안산다수)

언덕을 끼고 늘어선 동백나무들

猶殘晼晚紅 (유잔원만홍)

아직도 해 질 녘이면 붉게 물든 꽃이 남아 있네.

那將錦步障 (나장금보장)

어떻게 해야 비단 장막을 가져다가

遮截楝花風 (차절련화풍)

꽃바람 못 들어오게 막을 수 있을까.

 

[ 제 17 수 ]

連夜迎梅雨 (련야영매우)

여러 날 밤을 계속해서 내리는 봄비가

淹留喜有言 (엄류희유언)

사람을 오래 머무르게 하는 바람에 얘기꽃을 피웠네.

只緣歸亦客 (지연귀역객)

다만 돌아가도 또한 나그네이기에

無意出山門 (무의출산문)

절을 나설 생각이 없네.

 

[ 제 18 수 ]

門帖金生筆 (문첩금생필)

문에 붙인 대련對聯은 서성書聖 김생金生의 글씨고

樓懸道甫書 (루현도보서)

누각樓閣 현판懸板은 도보道甫 이광사李匡師가 썼네.

世遙疑有贋 (세요의유안)

시대가 멀어 가짜일까 의심하지만

名重覺無虛 (명중각무허)

소중한 명예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네.

 

[ 제 19 수 ]

倭奴昔破碣(왜노석파갈)

왜놈들이 옛날 비석을 부쉈어도

公子尙留名(공자상류명)

공자公子는 오히려 이름을 남겼네.

惆悵銅龍闥(추창동룡달)

실망하여 슬프네, 구리로 만든 용으로 장식한 문에

王兄做佛兄(왕형고불형)

왕의 형이요 부처의 형도 된다고 했었는데….

 

[ 제 20 수 ]

數曲山谿水 (수곡산계수)

굽이굽이 산골짜기를 돌아 흐르는 시냇물이

悠然送我回 (유연송아회)

돌아가는 나를 침착하고 여유롭게 배웅하네.

臨辭好泉石 (임사호천석)

떠날 즈음 대자연大自然의 경치가 좋아

無處不遲徊 (무처부지회)

여기저기 머뭇거리지 않는 곳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