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명화

이수문(李秀文). 묵죽(墨竹)10폭중 4폭

산곡 2022. 11. 25. 07:29

작가 : 이수문(李秀文)
제목 : 묵죽(墨竹)10폭중 4폭
언제 : 15세기 후반
재료 : 화첩종이에 수묵
규격 : 각각30.4 x 44.5cm
소장 : 일본개인

해설 : 이 화첩은 모두 열 폭으로 되어 있으며. 여러가지 다른 상황이나 환경에 놓여 있는 다양한 모습의 대나무를 묘사하고 있다. 이 화첩이 발견됨으로서. 이 그림의 화가인 이수문이 조선시대의 한국인이 었음이 확실히 밝혀지게 되었다. 이수문은 일본에서 이주문(李周文)이라고도 불리어져. 상국사(相國寺)의 선승화가(禪僧畵家)로 1423년에 일본 사절단의 일원으로 내조(來朝)했다가 이듬해에 돌아간 슈우분과 그 이름이 같으나. 실은 별개의 인물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조선초기의 회화를 일본화단(畵壇)에 전하고 영향을 미치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화첩의 끝 작품에는 영락갑진이십유이세차 어일본국래도북양사(永樂甲辰二十有二歲次 於日本國來渡北陽寫), 수문(秀文) 이라는 관기가 있어, 이수문이 1424년에 일본에 내도(來渡)한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관지의 해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수 있다. 즉 일본국에 내도 하여 북양에서 그리다. 라고 일본 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으나 이동주(李東柱) 박사는 일본국으로부터 북양에 내도하여 그리다. 로 읽고 있다. 전자와 같이 읽을 경우 북양은 일본에 있는 지명으로 볼수 있고. 또 이 그림의 제작도 일본 땅에서 이루어 졌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후자와 같이 해석 할 경우. 이 작품은 일본을 다녀온후 우리나라의 북양이라고 하는 어느 곳에서 제작된 것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문맥으로는 후자가 더 그럴 듯하나. 일본에서는 이수문이 일본에 정착하여 소오가파(曾我派)의 개조가 되었던 인물로 믿어지고 있어 그러한 사정과 잘 부합되지 않고 있다. 어쨌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관기는 이수문이 15세기 초에 활동했던 한국인이며.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 영향을 미쳤던 인물임을 분명히 해준다. 1424년에는 중국인은 누구도 일본에 입국할수 없었다는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화풍이 조선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화첩의 대나무들은 한결같이 줄기가 지극히 간늘고 반면에 잎은크고 길어서 중국의 묵죽과 큰 대조를 보인다. 또한 제1엽의 바위 묘사에는 곽희파의 영향이 감지되고 언덕의 표현 중에는 일종의 피마준(披麻皴)비슷한 준법이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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