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화암(華嵒)
아호 : 신라산인(新羅山人)
제목 :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언제 : 1750년
재료 : 족자 비단에 담채
규격 : 175.9 x 100.2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화암은 자를 추악(秋岳). 호를 신라산인(新羅山人)이라고 한 양주 팔괴중의 한사람이다. 그림은 인물. 산수. 화조. 초충화(草蟲畫)등을 두루 다 잘 그렸다. 이 그림은 67세 때 그린 것이므로 그의 만년작이다. 관지를 경오동일(庚午冬日). 신라화암시화(新羅華嵒詩畫) 라 썼고. 또 7행 80자나 되는 긴 오언시(五言詩)를 그림의 왼쪽 위에 썼는데. 오동나무와 대나무의 그늘. 수려한 산과 맑은 물이 시심(詩心)을 불러 일으킨다는 내용의 글이다. 산석과 나무의 묘사법은 황공망 화법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더 평화롭고 시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작가 : 화암(華嵒)
아호 : 신라산인(新羅山人)
제목 : 옥천사도(玉泉寺圖)
언제 : 1750년
재료 : 화첩 종이에 설채
규격 : 23.2 x 31.7 cm
소장 : 일본 개인
해설 : 이 옥천사도는 소품 20폭이 함께 있는 화암의 호림20경화첩(虎林20景畫帖)중의 하나다. 호림은 항주 에서 서남쪽으로 15리쯤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무림문(武林門) 안의 경승(景勝)을 말한다. 이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화암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낙천주의자였던 것 같다. 조금은 세련되고 화려하면서 경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화가 자신이 주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화암은 어떤 장대한 구성을 통해 강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려 한다거나. 세계를 변형시키기라도 할 듯 강한 충동에 사로잡혀 자신의 기질을 표현하려 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조용히 한 발 물러서서 자연과 인간체험의 조그만 면들을 관조하는 데 만족하는 것 같다. 짙푸른 오동나무. 연초록 빛깔의 바위. 유연한 청기와 지붕, 한가롭게 금붕어를 바라보고 있는 선비 등이 하나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이루고 있다.
작가 : 화암(華嵒)
아호 : 신라산인(新羅山人)
제목 : 산작애매도(山雀愛梅圖)
언제 : 1750년
재료 : 족자 비단에 설채
규격 : 216.5 x 131 cm
소장 : 천진 예술박물관
해설 : 화조와 초충(草蟲)을 잘 그려 소남전(小南田)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던 화암의 이 그림도 역시 그의 뛰어난 화조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은 대작이면서 수작인데 활짝 핀 매화꽃 나무에서 놀고 있는 두 마리의 작은 새를 바로 아래 바위 위에 있는 두 마리의 다른 큰 새가 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름다운 꽃과 새가 극락세계를 이룬 듯 하다.
작가 : 화암(華嵒)
아호 : 신라산인(新羅山人)
제목 : 종규출유도(鐘馗出遊圖) 부분
언제 : 1749년
재료 : 족자 비단에 담채
규격 : 132.1 x 68.2 cm
소장 : 미국 개인
해설 : 화암은 이 그림 외에 오일종규도(午日鐘馗圖) 종규가매도(鐘馗嫁妹圖) 종규평귀도(鐘馗枰鬼圖)등 종규도(鐘馗圖)를 여러 폭 남겼다. 종규도는 당대의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것이 처음인데. 종규(鐘馗)라는 귀신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당의 현종(玄宗)황제가 병이 들었던 어느 날 밤 꿈에. 눈은 크고 수염이 많이 나고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큰 귀신이 나타나 자기는 종남산(終南山)의 진사(進士)인 종규 라면서 현종을 병들게 한 작은 귀신을 잡아먹고는 나가다가 댓돌 아래에서 죽어버렸다. 그 꿈을 꾼 후 씻은듯이 나은 현종은 녹포(綠袍)를 그에게 하사하고 장례를 잘 치른후 오도자에게 종규도를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질병을 물리치는 귀신 그림인 종규도는 널리 그려졌는데 인물화에 능란했던 화암도 여러 폭의 종규도를 그렸다